출근길 우산 아래 풍경
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더니 출근길에는 가늘던 빗줄기가 어느새 굵어져 있었습니다. 집 앞 골목을 나서며 우산을 펼치자 투박한 방수 천 위로 빗방울이 톡톡 튀었습니다. 비 맞은 아스팔트에서는 촉촉한 흙내음이 올라왔고, 가로수 잎사귀에는 방울방울 맺힌 물방울이 햇빛을 기다리는 듯 맑게 빛났습니다.
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마주친 이웃의 우산 행렬이 마치 작은 축제처럼 느껴졌습니다. 검정·파랑·빨강 등 각기 다른 색의 우산이 빗속에서 어우러져 경쾌한 리듬을 만들고 있었습니다. 그 가운데 나는 검은 장우산 하나였지만, 빗물에 젖지 않도록 서둘러 우산 가장자리를 귀 옆까지 내려쓰고 걸음을 재촉했습니다.
버스가 들어올 때까지 잠시 멈춰 서서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냈습니다. 플레이리스트 맨 앞에 있던 잔잔한 피아노 곡을 재생하자, 빗소리와 선율이 함께 어우러져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. 버스가 멈추자 승차문 쪽으로 몸을 밀고 타고, 빈 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. 물웅덩이에 비친 가로등 불빛이 흔들리며 만들어 내는 몽환적인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회사 앞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.
사무실 빌딩 로비로 들어서자 우산을 접고 카운터에 맡겼습니다. 우산 보관함 번호를 확인하고 엘리베이터를 탄 뒤, 윙 하는 기계음 속에서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.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심 빌딩 숲 사이로 반짝이는 빗방울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.
사무실에 도착해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, 비 오는 출근길의 소소한 풍경이 하루 내내 이어질 것만 같아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.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이 빗길의 기억을 떠올리며 느린 호흡으로 업무를 시작해 봅니다.